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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만 교감하니 문자보다 매력적” 속마음 털어놓을 ‘익명의 타인’ 찾는 2030

작성자 : 관리자 / 날짜 : 2020.08.05

[사바나]
● 속상할 때, 심심할 때 찾는 ‘완벽한 타인’
● 익명의 힘 빌려 속마음 털어놓는 곳
● 외모 스펙 안 따지고 대화하는 게 좋아요
● 소셜 통화 앱 익명 게시판은 청춘의 자화상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소셜 통화 앱은 익명을 전제로 한 1대 1 통화 서비스다. 청년들은 힘들 때 익명의 힘을 빌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커넥팅 제공]

 

소셜 통화 앱은 익명을 전제로 한 1대 1 통화 서비스다. 청년들은 힘들 때 익명의 힘을 빌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커넥팅 제공]

익명의 상대와 통화할 수 있는 곳, 외모·성별·학벌·직업이 어떻든 어떤 편견도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곳, 힘들고 우울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 이곳은 바로 소셜 통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가족·친구·애인·선후배가 아닌 낯선 이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이곳에서 청춘들은 오늘도 통화하고 글을 남긴다. 

최형석(28) 씨는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자취한다. 5개월 전 취향이 비슷한 익명의 상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셜 통화 앱에 대한 얘기를 듣고 곧바로 회원에 가입했다. 최씨는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낯선 사람과 통화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매일 잠들기 전 여자 친구와 통화하곤 했어요. 헤어지고 난 뒤 밤마다 마땅히 통화할 사람이 없더군요. 대학원 동기 녀석과 통화해 보니 2분 만에 대화 소재가 떨어지더군요. ‘여자사람친구’와 매일 통화하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잖아요. 취미가 나와 비슷하고, 같은 어려움에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 소셜 통화 앱을 이용합니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통화를 시도했는데, 상대방도 자취생이더라고요. 공통점 덕분인지 저도 상대 여성분도 즐겁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속이 얼마나 후련하던지…”

2년차 헤어디자이너 이아현(23) 씨는 마음이 무거울 때 소셜 통화 앱에 들어간다. 8개월 전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다 우연히 이 앱의 존재를 알았다. 비슷한 고충을 겪는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앱을 내려받았지만, 낯선 이와 실제로 통화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날 미용실 근무를 마치고 어두컴컴한 자취방에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울적해졌다. 그대로 앱에 접속해 낯선 이와 통화하면서 펑펑 울었다. 



“속이 얼마나 후련하던지…. 다짜고짜 ‘힘들고 서럽다’ ‘사람이 무섭다’ 말했더니 상대방이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며 위로해 줬어요. 그때부터 속상하거나 우울할 때 소셜 통화 앱을 이용했어요. 사회 초년생 상대방이 회사 일로 고충을 토로하면 내 일처럼 같이 화내고 울어주고 웃어줘요.” 

소셜 통화 앱은 익명을 전제로 한 1대 1 통화 서비스다. 전화번호는 물론 이름, 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상대와 통화한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앱을 내려받은 후 회원 가입을 한다. 여행·음악·게임·영화·독서 등 관심사를 선택하고 성향 분석 테스트를 마치면 업체 측이 이를 토대로 취향이 비슷한 상대를 파악한다. 이용료를 결제한 뒤 ‘통화하기’ 버튼을 누르면 접속 중인 회원 가운데 무작위로 성향이 비슷한 사람 한 명을 연결해 준다. 한 번 통화한 상대방과 다시 연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재 시중에는 6개의 소셜 통화 앱이 출시됐다. 

소셜 통화 앱을 이용하는 이들은 주로 밀레니얼 세대다. 소셜 통화 앱 ‘커넥팅’을 운영하는 와이피랩스에 따르면 7월 기준 20대가 전체 사용자의 90%를 차지한다. 

중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대학생 안세현(21) 씨는 얼마 전 ‘중드’(중국드라마) 마니아와 통화했다. 안씨는 “지금까지 다섯 차례 통화했는데, 다행히 ‘꼰대’를 만난 적이 없다”며 “앞으로도 내가 뭔가 배울 수 있는 사람과 통화하고 싶다. 함께 발전해 나가는 그런 관계가 좋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김지예(24) 씨가 최근 통화한 이는 공연기획사 직원이다. 김씨는 소셜 통화 앱을 두고 목소리로만 교감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목소리로만 교감한다는 점이 매력적

청년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소셜 통화 애플리케이션. ‘목소리톡 리슨’ ‘굿나잇’(왼쪽부터).

청년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소셜 통화 애플리케이션. ‘목소리톡 리슨’ ‘굿나잇’(왼쪽부터).

“현실에서는 관심사나 취향이 비슷해도 나와 상대방의 스펙을 비교하며 대화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곳에선 서로의 외모·나이·학벌·직업을 모르니 편견 없이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오로지 목소리로만 교감하기에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하게 돼요.” 

소셜 통화 앱은 청춘들에게 ‘일기장’ 같은 존재다. 소셜 통화 앱은 통화 서비스와 함께 익명 게시판을 운영한다. 회원들은 통화를 하든 하지 않든 일기처럼 익명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이 게시물을 본 다른 회원들은 댓글을 단다. 회원들이 함께 기록한 게시판은 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이다. 

‘청춘의 일기장’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업체들은 불편한 점이나 이용 후기를 올리는 용도로 게시판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대기시간을 줄여주세요” “통화 연결 상태를 개선해 주세요” 같은 건의 사항이 주로 올라왔다. 그러다 게시판에 하나둘 사람 사는 이야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회원은 “용기 내 첫 통화해 봤어요. 뭐든 처음 시작이 어렵지 마음먹으면 못할 게 없죠. 이참에 내일부터 다이어트 다시 시작해야겠어요”라고 썼다. 다른 회원은 이렇게 적었다. “여기서는 솔직한 심정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게 돼 좋아요.”
 

익명의 힘 빌려 속마음 털어놔

소셜 통화 앱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게시물은 반려동물 사진이다. 한 회원이 “우리집 안방마님 야옹이를 소개합니다”라면서 사진을 올리면 다른 회원들이 “저 도도한 자태를 보라. 우리집 야옹이와 다를 바가 없네요” “님도 곧 방에서 쫓겨나실 듯ㅋㅋ” 같은 댓글을 남긴다. 그러면 글쓴이가 “이미 거실로 쫓겨났습니다 ㅠㅠ”라고 호응한다. 

소셜 통화 앱 ‘커넥팅’을 운영하는 홍준성 와이피랩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현대인이 느끼는 군중 속 고독감을 채워주고 싶어 서비스를 출시했다. 고객들이 단순히 통화하는 행위 그 이상의 가치를 느끼는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익명의 힘을 빌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 많다.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익명 게시판을 보며 ‘대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낀다”고 말했다. 

‘커넥팅’의 익명 게시판을 들여다보면 1인 가구가 많은 밀레니얼 세대는 ‘혼삶(혼자 사는 삶)’이 주는 자유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찾고 있다. 20대 직장인 여성 A씨는 “2주 만에 맞이하는 주말 저녁입니다. 그동안은 맨날 야근하느라 바빴어요. 혼자 작은 방에 살다 보니 누군가와 밤새워 수다 떨고 싶을 때 못 하는 게 너무 아쉬워요. 오늘 밤에는 마음껏 통화할 거예요”라고 익명 게시판에 적었다. 회원들은 “통화 마친 뒤 후기 남겨주세요” “여기 오늘 밤샐 각ㅋㅋ”라고 호응했다. 

혼자 사는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소셜 통화 앱에서는 공감과 위로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방러들’은 익명 게시판을 빌려 도시가 주는 설렘과 환상을 토로한다.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조심스럽게 털어놓기도 한다. 여성 B씨는 익명 게시판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호텔에서 꽃장식 업무를 담당하는 23살 플로리스트입니다. 계약직이고요. 스무 살 때 고향에서 혼자 상경해 회사 다니고 있어요. 지금 다니는 곳은 세 번째 직장인데, 첫 사회생활보다는 많이 적응했지만 여전히 외롭고 힘들어요.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이 자꾸 생각나요. 언젠가는 저와 같은 ‘지방러’와 통화할 수 있기를.” 

지방러는 지방이라는 단어에 행위자를 뜻하는 ‘er’을 붙인 신조어다. B씨의 글을 읽은 다른 직장인이 이렇게 답했다. 

“저는 27세고요. 고향에서 올라와 혼자 사는 직장인입니다. 얼마 전 통화한 남성분이 스무 살 지방러인데, 소믈리에(포도주를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사람)가 되기 위해 레스토랑 두 곳에서 알바를 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열심히 사는 모습 보고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어요. 반성합니다. 님은 저보다 잘하실 거예요. 우리 모두 힘내요.” 

소셜 통화 앱 ‘목소리톡 리슨’ 익명 게시판에는 ‘내일 출근하기 싫다’란 글이 많았다. 한 회원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자리를 얻었지만 고단하다고 토로하자 너도나도 “나도 그렇다”는 댓글을 달았다. 한 회원은 “빨간날 출근하는 인생ㅠㅠ”이라고 적었고, 다른 회원은 “결국 퇴사하기로 결정했다”고 썼다. 

소셜 통화 앱은 연애 상담 공간이 되기도 한다. “학교 선배를 짝사랑하고 있어요. 선배는 여자친구가 있어요. 저랑은 10년지기 친구고요. 고백하면 안 되겠죠?” 한 청춘의 진지한 고민에 회원들은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게 답을 던져준다. “제가 그 마음 너무 잘 압니다. 친구의 남친을 몰래 좋아하는 1인이요.” “사랑은 원래 움직이는 거라고 배웠습니다만….” “할까 말까 고민될 땐 하라고 했다. 확률은 반반. 지르세요. 물론 친구와는 인연 끊을 각오하시고.” 다른 청춘은 늦었지만 진심 어린 고백을 남겼다. “취업준비생입니다. 그녀에게 못 전한 내 마음, 여기에 끄적여봅니다. ◯◯야 보고 싶다.”
 

“억눌린 교류 욕구 충족해 줘”

소셜 통화 앱에서 가장 축하받는 일은 커플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소셜 통화 앱 ‘굿나잇’ 익명 게시판에는 한 20대 후반 남성이 인연을 만난 과정을 이렇게 밝힌다. 

“소셜 통화 앱에서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연결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두 사람 모두 같은 지역에 살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통화를 마치고 난 다음 실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저,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2시간 넘게 통화하느라 예기치 못한 지출이 있었지만, 인연을 만난 값이라 생각하렵니다.”
 
일각에선 익명의 상대와 통화하는 것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다 보니, 상대방에게 연락처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수치심을 주는 말을 건네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 간혹 통화 중에 상대방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남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소셜 통화 앱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앱 내 ‘신고 기능’을 마련해 놓았다. 신고 접수 절차는 이렇다. 회원이 통화 중 종료 버튼을 누르면 ‘종료 사유’를 선택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한 가지를 고른 후 빈칸에 신고 내역을 적는다. 운영진은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5분 이내 신고 대상 회원에게 제재 조치를 취한다. 사안이 엄중할 땐 회사 차원에서 형사 고발 조치가 이뤄진다. 

소셜 통화 앱을 이용하는 동안 상대와의 통화 내용을 저장할 수는 없을까. 현재 소셜 통화 앱에는 음성 녹음 기능이 따로 없다. 자신의 휴대전화에 설치한 녹음 앱으로 통화 내용을 녹음할 수 있으나, 자기 음성만 녹음되는 한계가 있다.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후 상대와의 통화 내용이 필요할 경우라면, 업체 측에 나와 상대방 간의 녹취 자료를 요청해 보자. 상황에 따라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소셜 통화 앱에서 낯선 이에게 속마음을 고백하고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청춘들. 왜 낯선 이와의 통화가 인기를 끄는 걸까. 전문가들은 ‘교류 욕구’와 ‘익명성’ 두 가지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강정석 전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20, 30대는 사람과 교류하고자 하는 욕구가 가장 강한 시기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극심한 취업난과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과거보다 외부 활동이 줄어 이러한 교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소셜 통화 앱은 이런 욕구를 충족해 주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익명성을 보장해 주기에 SNS에는 올릴 수 없는 내용도 마음놓고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다.” 

소셜 통화 앱의 인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물리적 접촉이 어려워진 상황이어서 청년 세대는 정서적으로 연결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해 줄 대안을 계속 찾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